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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에게는 현재라는 것만 있었다. 하지만 그 현재는 지금 생생하게, 운동감있게 펼쳐지는 상태가 아니라 안개처럼 뿌옇게, 분명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게 풀풀 흩어지는 것에 가까웠다. _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올 해의 우승작인 <너무 한낮의 연애>를 시작으로 총 일곱개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소설 다음에는 작가가 쓴 작가노트가 이어지고, 다음 다른 작가가 쓴 해설이 나온다. 그런식으로 일곱개의 단편이 펼쳐지며, 마지막에 심사경위와 심사평으로 마무리된다. 

 

 

가장 좋았던 글은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 정용준의 <선릉산책>, 장강명의 <알바생 자르기> 이렇게 세 편.

 

 

모든 이가 따라야만 한다고 종용되는 표준적인 일상의 패턴을 기준으로 삼을 때, 더디게 가는 이가 있기 마련이고 소설가는 예리하게도 그이를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는 말이다. 그러한 인물은 처음부터 목표가 정해져 있는 삶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 대신 눈앞에 놓인 사건의 덩어리를 상대하고 조각해가는 일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이의 얼굴엔 그래서 젊음도 늙음도 없다. 다만 '생'이 있는데 그 생은 시간을 비켜간 채려 마련된 자리에 있다. _해설/ 양경언 <소설의 맡>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의 양희는 너무 궁금한 인물이었다. 글을 읽고나면 마치 광화문 어딘가에 양희가 정말 있을것 같기도 한 느낌이 든다. 소설뒤에 이어지는 해설속의 말처럼 양희는 '모든 이가 따라야만 하나고 종용되는 표준적인 일상의 패턴'과는 다른 인물인데,  양희의 삶은 조금 측은해지기도 하며, 한 편으로는 살짝 부럽기도 하다. 그녀의 삶이 아니라 그녀의 '생'이. 그이의 '생'의 느낌이 어떤건지 알고싶었다. "사랑하죠 오늘도" 같은 말을 툭 던지고, 얼마뒤 "없어졌어요" 하는 양희. 그녀는 대체 어디서 나온 인물이란 말인가.

 

 

순간 언덕에서 강한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허공을 봤다. 바람이 보였다. 바람이 지나가는 곳으로 나뭇잎과 모래, 이름 모를 날벌레들과 까만 비닐봉지가 함께 날렸다. 투명한 길 하나가 허공속에 놓인 것 같았다. 한두운은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앞으로 조금 내밀어 바람의 맛을 보고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바람이 멎고 우리는 다시걸었다. _정용준 <선릉산책>

 

 

숲속으로 낮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늘이 넓어지고 대기가 희뿌옇게 변했다. 한여름 늦은 오후가 이렇게 어두워질 수도 있나. 구름도 바람도 없는데, 태양은 저리도 맹렬한데 왜 숲은 어둡나.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한두운에게는 그림자가 없다. 윤곽선도 없고 희미한 얼룩 같은 것도 없었다. 곰곰 생각하니 걷는 내내 그림자를 본 기억이 없다. 같은 길을 돌고 또 돌았다. 선릉에서 정릉으로 정릉에서 다시 선릉으로, 한두운은 중력 없이 저항 없이 허공에 한 뼘 떠서 쭉 미끄러지듯 걸었다. _정용준 <선릉산책>

 

 

우선 나는 장애인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잘 못본다. 좋은 취지에서 만든 것들이 많음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보는 것이 불편하다. 가장 큰 이유는 장애인이 아닌 사람이 연기하는 장애인을 보는 것이 불편해서인데, 그들은 진정 그 마음과 삶을 이해하고 연기하는 것일까 하는 의심을 품게된다. 아마 내 심보가 고약한 탓이겠지. 

 

 

책으로 그런 사람을 만난건 아마 이 소설에서가 처음인것 같다. 처음 한두운을 만났을 때 나도 선릉 어디 언저리에 함께 있었던 것 같았다. 모르긴 몰라도 작가가 원했던 흐름으로 아주 잘따라간 독자중 한 명이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곤 나중에 다시 한 번더 <선릉산책>을 읽어보았다. 그런데 이야기만 따라가다 미쳐 보지못했던 글이 보였다. 그 글이 위에 옮겨적어놓은 글이다. 익숙한 풍경을 익숙한 단어들로 풀어썼는데, 매일 지나치던 동네풍경이 신선하게 느껴질때가 있는 것 처럼, 글들이 그랬다. 어쩌면 단순할 수도 있는 풍경을 저렇게 묘사하다니. 덤덤한듯 센스있게.

 

 

걔 불쌍하다고, 잘 봐주려고 했었잖아. 가난하고 머리가 나빠 보이니까 착하고 약한 피해자일 거라고 생각하고 얕잡아 봤던 거지.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든. 걔도 알바를 열 몇 개나 했다며. 그 바닥에서 어떻게 싸우고 버텨야 하는지, 걔도 나름대로 경륜이 있고 요령이 있는 거지. 어떻게 보면 그런 바닥에서는 우리가 더 약자야. 자기나 나나, 월급 떼먹는 주유소 사장님이랑 멱살잡이해본 적 없잖아? _장강명 <알바생 자르기>

 

 

우리는(나는) 한 때 '알바생'이었고, 언젠가는 마음에 들지 않는 혹은 다른이들이 마음에 들어하지않는 '알바생'을 마주하게 될지(이미 만났었는지)도 모른다. "이건 마치 내이야기야!" 라던가 하는 것 까진 아니더라도, 왠지 언젠가 겪어봤음직 하거나 겪게 될지도 모르는이야기 처럼 느껴지는 것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스토리와 왠지 소리가 들리는듯한 대화체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을 통해 장강명이라는 작가를 알게되었다. 소설도 소설이지만 소설뒤에 나오는 오해진의 해설에 나오는 그에대한 이야기 때문에 그가 더 궁금해졌다. 그리고 얼마뒤 그의 소설책인 <한국이 싫어서>를 구매했다. 

 

 

'청년기'는 예부터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문학적 나이로 삼고자 한 특별한 시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장강명은 한 번도 그 시간을 '청춘(靑春)'이라는 말로 상징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에게 '이십대'는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않을' 개별 인생의 특권적 시간이 아니다. 그는 그 시기를 철저히, 세계의 흥망성쇠와 궤를 같이하는 사회적 나이로 간주했고, 바로 그 때문에 그는 현재 대한민국에 거하는 그의 주인공들에게 단 한 번도 '봄'을 선사하지 않았다. _해설/ 오해진 <'장강명 스타일'과 그의 젊은 페르소나들>

 

 

무려7회나 된 <젊은작가상 수상집>을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2017년의 책도 기다려진다. 물론 세월의 흘러감은 달갑진 않지만.

 

 

 

 

2016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지은이: 김금희, 장강명, 기준영, 정용준, 김솔, 오한기, 최정화

출판사: 문학동네

출간일: 2016-04-12

정가: 5,500원

반양장본 │344쪽 │205x130mm │399g │ISBN : 9788954640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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