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x 한겨레21 드라마작가 인터뷰 원이슈 특집호》를 읽었다.

2023. 3. 1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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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과 <한겨레21>의 콜라보 매거진입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씨네21>은 영화잡지(1995년 창간), <한겨레21>은 시사잡지(1994년)입니다. 이 유서 깊은 두 잡지 <씨네21>과 <한겨레21>이 합작으로 펴낸건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요, 2021년 8월과 2022년 3월에 문학 작가와 비문학 작가를 인터뷰한 두 번의 '21 WRITERS' 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드라마. 드라마작가 22명의 인터뷰를 담은 통합본이 출간되었습니다. 21시리즈니 만큼 21명으로 계획했지만, 마지막에 양희승 작가가 박해영 작가를 추천하면서 22명이 되었다고 하네요.

 

드라마/영화 작가는 시나리오, 즉 각본을 씁니다.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출간해서 판매하기도 하지만, 원래는 배우나 영화제작에 관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읽을일이 잘 없는 글이었죠. 시나리오에는 각 장면의 배경, 온도, 습도(?)와 대사의 톤과 감정의 자세한 설명이 들어가 있어요. 시청자/관객은 장면과 대사로만 그 내용을 전달받습니다.

 

 

시나리오는 설계도와 같다.

 

 

시나리오는 영화/드라마의 설계도라고도 합니다. <부산행(2016)> 연출자이자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2021)>의 각본을 쓴 연상호 감독도 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각본은 안전한 설계도'라고요. 예전에 어떤 글에서 '시나리오는 설계도다'라는 글을 읽은 후부터는 시나리오를 더 관심을 가지고 애착이 생겼습니다. 좋았던 작품들의 시나리오를 사서 다시 읽어보기도 했고요.

 

건축에 대입해보면 영화감독이 현장을 관리하고 공사과정에 대해 모든 것을 꿰뚫고 있어야 하는 현장감독(현실에서 그 정도의 인식은 없지만)이라면 시나리오 작가는 설계도면을 그리는 건축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씨네21> x <한겨레21> 합본호를 읽으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들이 하는 이야기에서 건축물을 계획하는 입장인 사람으로서 배울 점이 많았거든요.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쓰는 습관

 

 

넷플릭스 드라마 <D.P(2021)>를 쓴 김보통 작가는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쓰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쓰는 습관'은 건축뿐 아니라 많은 직업에서도 통용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꾸준히 하면서 준비를 해놓으면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꾸준히'라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이죠. 그래서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해보라고 합니다. 

 

 

결국 각자가 알아서
부딪쳐가며 터득하는 것

 

 

JTBC드라마 <구경이(2021)>를 쓴 성초이 작가는 뛰어난 작품을 보고 감탄하며 "'이렇게 쓰고싶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이런 사람이 예술을 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어라? 나도 그런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가들의 작품이나 대가가 아니더라도 감동이 있는 공간을 만나면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성초이 작가는 '천재'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감탄하다가도 "어짜피 내가 그 사람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쓰는 일은 결국 각자가 알아서 부딪쳐가며 터득하는 것"이라는 말에 무릎을 탁 쳤습니다. 잘하는 사람을 보며 나는 왜 저렇게 안될까라고 한숨 쉬는 대신, 각자의 일을 터득해 가는 것. 그게 자신의 일을 지속해 나가고 성취감을 얻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본을 완성하는 건
결국 작가다

 

 

tvN드라마 <갯마을차차차(2021)>를 쓴 신하은 작가는 "드라마가 아무리 협업이고 소통이 잘 되더라도 대본을 완성하는 건 결국 작가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건축도 그래요. 처음부터 끝까지가 협업입니다. 건축주와의 소통부터 다양한 협력업체들과의 소통과 협업, 그리고 공사를 하며 시공자와의 소통까지도요. 하지만 결국 도면을 완성하는 건 설계자니까요. 

 

시나리오 작가와 건축가는 닮은점이 정말 많습니다. 작가들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이전에 굉장한 자료조사를 합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장소를 살피기도 합니다. 틈틈히 나중에 써먹을 것들을 기록해두기도 하고요. 그리고 지난한 쓰기의 시간이 지나면, 글자가 소리가 되어 현장에서 실현되죠. 그때에 또 이런저런 수정작업을 거치기도 합니다. 쓴 것들이 현장의 환경과 만나 소리가 되어 나올 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기도 하거든요. 

 

 

세상에 없던 걸 만들어내는 개발자가 아니라
경험으로 존재하는 이야기를
새로운 이야기처럼 들리게 하는 역할

 

 

이러한 과정들이 건축설계의 과정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SBS드라마 <그 해 우리는(2021)>을 쓴 이나은 작가의 말이 가장 와닿았습니다.

 

"저는 세상에 없던 걸 만들어내는 개발자가 아니라, 이미 구전으로나 경험으로 존재하는 이야기를 새로운 이야기처럼 들리게끔 하는 중간 필터 같은 역할을 하지 않나 싶어요."

 

 


이번 통합호 <씨네21>과 <한겨레21>에 실리는 인터뷰 내용은 동일합니다. 다만 표지와 내지 디자인이 각각 다릅니다. 일종의 2 커버 버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 드라마를 쓰고 싶은 사람,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사람, 글을 쓰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유용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어요. 프로 작가들의 세게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입니다.

 

한겨레21 h21.hani.co.kr

씨네21 www.cine21.com


각각의 표지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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