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콤페
1877년 고부(工部)대학교 조가학과(현 도쿄대학 건축학과) 교수로 부임한 영국의 조사이어 콘더는 “콤페의 가장 큰 목적은 ‘페어플레이’다”라고 했다. 공공기관에서 짓는 대부분의 건축은 콤페 그러니까 건축 설계경기를 통해 지어진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굳이 콤페라는 과정을 거치는 것에는 조사이어 콘더의 말처럼 ‘페어플레이’라는 전제가 있다. 정말 콤페는 ‘페어’할까? 《르코르뷔지에 미워》(도서출판 집, 2021)에서 르코르뷔지에의 앞뒤가 다른 모습을 미주알고주알 씹었던 요시다 켄스케(吉田硏介)가 이번에는 건축 콤페를 이야기한다. ‘콤페’라는 제도의 심사방식에 딴지를 건다. 시간이나 거리처럼 일정 수치로 정확하게 계측할 수 없는 건축 콤페에서 공평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건축 콤페: 일본 건축 콤페의 볼썽사나운 역사》는 ‘일본 최초의 콤페다운 콤페’였다는 타이완총독부 청사 콤페(1907)부터 2021년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 국립신경기장 콤페(2012)까지 일본 근현대 건축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콤페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한다. ‘콤페’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1907년, 논의 끝에 실시하게 된 타이완총독부 청사 콤페. 27팀이 참여했고 2차에 걸쳐 심사를 했으나 1등을 선정하지 못했다. 결국 10년 뒤 2등안을 바탕으로 타이완총독부 기사의 작업으로 지어진 건물은 “장식이 과한 메이지 붉은 벽돌 양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것이 일본의 콤페다운 콤페의 ‘시작’이다.”(15쪽) 모두 140팀이 응모한 콤페에서 1차 심사를 통해 40점을 선정, 다음 날 2차 심사를 통해 최종 16점을 선정하고, 선정된 16점을 대상으로 8명의 심사위원이 각자 3점을 선정하고 선정된 안을 대상으로 다시 투표해서 최종 당선안을 선정하기로 심사위원이 의견을 모으고 심사한 결과 5표를 받은 안부터 1표를 받은 안까지 8점을 선정됐다. 이 8점을 대상으로 재투표를 했는데 앞선 투표에서 2표밖에 받지 못했던 안이 과반수 이상의 득표를 획득해 최종 1등으로 선정된 콤페가 있다. 이를 두고 일본의 건축사가인 후지모리 테루노부는 “기시다 선생님이 있는 힘을 다해 애를 써서 역전”(68쪽)이라고 표현했다. 바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과 기념관 콤페로 역전의 주인공은 단게 켄조이고 ‘기시다 선생님’은 심사위원이었던 기시다 히데토이다. 이 두 사례 이외에도 ‘당선작 없음’이라던 콤페의 심사위원이자 기획설계자였던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진 히로시마 평화기념 카톨릭 성당(31쪽), 공모지침을 어겼음에도 당선된 센다이시 공회당(53쪽), 1등안을 발표하고 나서 예산 초과, 땅의 역사적 맥락 저해 등을 지적하는 여론에 밀려 새로 콤페를 진행한 신국립경기장(157쪽) 등 콤페의 다양한 사례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한다. 스포츠처럼 빠르기를 겨룬다면 0.1초까지 정확하게 계측할 수 있다. 높이나 거리도 말 그대로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계측할 수 있으니, 명확하게 공평하다. 그러나 건축 작품은 본시 무리다. 애당초 불가능한 얘기다. _5쪽에서 그러니까 이 콤페는 심사위원이 자기가 설계를 하고 싶어서 일부러 1등 당선작을 내지 않았다는 셈이 되어 건축계에서 ‘의혹’으로 남고 말았다. 오미 사카에는 “알 수 없는 것이,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었던 무라노 토고가 카톨릭교회로부터 단독으로 지명 의뢰를 받아 건물을 지은 것이다”라고 책에 쓰고 있다. _32쪽에서 그리고 실로 교묘한 것인데 “8월 14일에 설계심사위원회 예비 심사, 19일 최종 심사까지를 ‘심사 기간’으로 정했다”고 한다. 14일의 ‘예비 심사’는 지침에서도 발표된 건축가 심사위원 6명으로 표결했지만 야마다 마모루가 1표밖에는 얻지 못했으므로 19일까지 최종 결정을 미루고 그 사이 6명의 국회의원을 소집해서 19일 ‘최종 결정’을 내렸다. _120쪽에서 어느덧 마키 후미히코의 이의 제기는 순식간에 퍼져나가 건축계는 불똥이 떨어진 것처럼 소란스러워졌다. 그다지 관심이 없던 건축가들, 평면도와 높이를 알 수 있는 입면도도 제대로 보지 않던 건축가들도 일본을 대표하는 원로가 등장해서 나발을 불어대니 나발 부는 사람을 따라가는 형국이었다. _169쪽에서 현대 일본건축의 성장 기록 일본 국회의사당, 오사카 시청사, 히로시마 평화기념 카톨릭 성당, 일본 무도관, 도쿄 카테드랄 성 마리아 대성당 등 책에 소개된 건축물은 대부분 일본에 가면 한번쯤 들르거나 스쳐지나게 되는 곳이다. 이 책을 번역한 강영조 교수는 “이 책은 콤페 무용론이 아니라 근현대 일본 건축가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역사에 남을 명건축을 만들게 되었나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일본의 건축가들이 좋은 건축을 만들기 위하여 흘린 뜨거운 땀방울의 기록”(184쪽)이라고 말한다. 《건축 콤페: 일본 건축 콤페의 볼썽사나운 역사》에는 콤페라는 이벤트 이외에 일본의 주요 근현대 건축물과 100여 명에 달하는 일본 근현대 건축가의 이름이 나온다. 대부분 일본 근현대건축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주요 건축가와 작품이다. 한국어판에서는 일본의 근현대건축에 대한 정보가 적은 독자를 위해 책에 언급된 건축가와 건축물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페이지를 추가했다. 저자가 원고 쓰면서 작성한 책에 소개된 건축 콤페 내역을 소개하는 페이지도 추가했다. 뿐만 아니라 콤페 출품 당시 이미지와 완공된 모습을 비교하기도 하고 콤페 과정에 문제가 되었던 부분을 독자도 함께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 도면과 사진 자료를 적극 활용했다. 최소한의 이미지만 보여준 일본판과 다른 점이다. 일본판과 다른 또 한 가지는 표지이다. 여느 표지와 달리 뒤표지를 저자가 경험한 에피소드의 한 장면을 묘사한 그림으로만 구성했다. 콤페 응모자는 마감 날의 우체국 소인을 받아 제출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작업하다가 밤 12시까지 우편물을 받아주고 그날의 소인을 찍어주는 도쿄중앙우체국으로 달려가니 이미 우체국 로비는 응모자들로 꽉 차있었다. 접수번호를 받고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우체국 로비에서 건축가들은 바닥에 도면을 펼쳐놓고 손 보고 있었다.(137쪽) 건축가들은 콤페에 제출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에너지와 경비를 쏟는데 어떤 말보다 콤페에 임하는 건축가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다. 많은 건축가가 콤페 당선을 계기로 일약 세계적 건축가가 된 몇몇 건축가를 떠올리며 자신도 그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지금도 치열하게 자료를 찾고 프로그램을 짜고 도면을 그리고 있다. 이 시대는 유달리 콤페에 크게 기대를 걸었다. 콤페라는 것에 꿈을 걸고 열심히 하던 시기였다. 하룻밤 사이에 무명의 건축가가 신데렐라가 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니었다. _49쪽에서 그는 이 콤페 전에 ‘홍콩 피크(홍콩의 빅토리아 피크에 계획된 복합시설 ’더 피크‘의 콤페)’의 심사위원을 맡아 전세계를 놀라게 한 결과를 연출한 직후였다. 무명의 자하 하디드를 일약 세계적 건축가로 부각시킨 ‘사건’이었다. 젊은 건축가들이 몰려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 시기 이소자키 아라타는 콤페 심사위원이 되는 것을 설계를 하는 것과 동등한 건축표현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_49쪽에서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일본 근현대 건축사에 등장하는 건축의 설계안과 건축가의 선정과정에 더 흥미가 간다. 남의 나라 건축 이야기라 구경꾼의 입장이어서 그런지 저자가 분통을 터뜨리는 불공정성에 공감하기보다는 심사위원장이 당선안을 무단으로 변경하고, 1차 고득점 설계자가 최종심사에서 번복되기도 하고,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장이 느닷없이 심사위원을 추가 영입하여 심사결과를 뒤집기도 하는 부분이 더 흥미를 끈다. _183쪽에서
- 저자
- 요시다 켄스케
- 출판
- 집
- 출판일
- 2023.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