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2023. 9. 2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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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The Most Honest Confession: Chang Ucchin Retrospective

 

2023.09.14. ~ 2024.02.12.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MMCA Deoksugung

 


 

📌전시소개
장욱진(1917-1990)은 한국 근현대 화단에서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유영국 등과 함께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2세대 서양화가이자, 1세대 모더니스트이다.

'지속성''일관성'은 장욱진 그림의 주요한 특징이다. 그러면서도 재료를 가리지 않는 자유로움과 하나의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작태도를 보여주며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다. 현재 알려진 작품들만 헤아려도 유화 730여 점, 먹그림 300여 점으로 그 수가 상당하다. 나무와 까치, 해와 달, 집, 가족 등 일상적이고 친근한 몇 가지 제한된 모티프만을 평생에 걸쳐 그렸지만, 매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쳤다. 또한 서양화를 기반으로 동양적 정신과 형태를 가미하면서도 서로 간 무리 없이 일체를 이루는 경우는 장욱진 외에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번 전시는 1920년대 학창 시절부터 1990년 작고할 때까지 약 60여년간 꾸준하게 펼쳐온 장욱진의 유화, 먹그림, 매직펜 그림, 판화, 표지화와 삽화, 도자기 그림을 한 자리에서 조망한다. 장욱진은 그의 화문집 『강가의 아틀리에』서문에서 밝혔듯이, "참된 것을 위해 뼈를 깎는 듯한 소모"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발상과 방법으로 화가로서의 본분을 지키며 자기자신을 소모시켰다. "나는 정직하게 살아왔노라."라고 당당하게 외치며 '진솔한 자기 고백'으로 창작에 전념했다.

그가 떠난지 30여년이 흘렀지만, 그의 그림은 지금도 여전히 세상을 향해 정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그림처럼 정확한 나의 분신은 없다. 난 나의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나를 녹여서 넣는다. 나를 다 드러내고, 발산하는 그림처럼 정확한 놈도 없다. - 장욱진, 「마을」, 『조선일보』, 1973.12.8.

 

 

나무 아래 아이 / 들*, 1960 (리움미술관)

*조선일보, 1960.10.11.수록 작품 제목
장욱진이 개인적으로 아꼈던 작품

(나무아래 천진하게 누워있는 아이만 보다보면 그림 상단의 귀여운 소를 놓칠 수 있음)

 

 

 

 

춤, 1964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춤추는 두 사람의 얼굴표정이 킬링포인트.

 

 

 

 

무제, 1974

까만집 안에 턱을 괴고 엎드린채로 무뤂을 까딱거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 귀엽다.

 

 

 

 

나무와 새, 1957 (개인소장)

나무가 땅이 되고 지구가 되고.

새는 귀엽고 아이도 귀엽고

귀여운건 아무도 못이기지

 

 

 

 

우산, 1961 (개인소장)

 

 

 

 

얼굴, 1959 (개인소장)

《제8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59)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출품한 작품.

화면을 평면화시키고 마치 입체주의와 같은 시각으로 다시점(多視點)을 면으로 재구성해 전위적인 표현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조형적 이미지는 파울 클레(Paul Klee)의 <쎄네치오 Senecio>(1922)를 연상캐 한다. 클레의 <쎄네치오>가 사각의 화면에 꽉찬 둥근 얼굴을 기하학정 형태감과 주황색 계열의 온난한 색감으로 표현했다면, 장욱진의 <얼굴>은 여린 아이의 모습을 흰색과 하늘색 계열의 차가운 색감으로 은은하게 표현했다.

 

 

쎄네치오 Senecio, Paul Klee, 1922

 

 

 

 

 

아이 兒, 1957 (개인소장)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시기(1954-1961)에 그려진 이 그림은 이야기가 있는 소재들을 아기자기하게 배치하던 이전 방식과 달리 하나의 소재에 집중하고 있다. 옅은 색조의 배경에 원, 사각형, 직선으로 표현된 기하 형태의 조형 방식은 당시 국내 화단에서 새롭게 부상한 추상표현주의나 엥포르멜 미술의 거칠고 비정형적인 조형방식과 차이를 지닌다. 작품의 간결한 표현이 외견상 아동화나 파울 클레의 작품과 유사하게 보일 수 있으나, 화가의 단순한 조형성이 '본질의 추구'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들 작품과는 거리가 있다.

 

 

 

 

집과 아이, 1959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바탕에 물감을 두텁게 바르고 가는 도구를 이용하여 바탕을 긁어내며 대상을 묘사했다. 장욱진은 생전에 집을 네 번 직접 설계하고 지었을 정도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다. 때문에 장욱진의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형태의 집에는 삶의 터전 이상의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집의 밑면에 다리를 그리고, 내부에는 활기찬 아이의 모습을 그려넣어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했다.

 

(집이 땅에서(액자에서) 수직이 아닌 비스듬하게 그린 이유가 다리를 그린것 과 같은 이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까치집, 1977 (개인소장)

장욱진은 어느 날 새벽 화실 밖 키 큰 나무에 매달린 까치집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정겹게 느껴져 이 그림을 완성했다. 나무 위에 배치된 둥근 원이 까치 집인 셈이다. 까치가 나무에 앉아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까치집이 사람사는 마을로 표현된 우의적인 그림이 되었다. 

이 그림의 안료는 외국 여행을 마친 제자로부터 선물받은 일본산 '앤티크 물감'으로 알려져 있다. 제자가 처음 사다준 물감의 색상이 세 가지 뿐이라 장욱진은 더 많은 색상을 구입해 독특한 물성의 효과를 실험하려 했다. 그는 앤티크 물감의 특징을 흰색이 없는 점과 캔버스에 잘 붙지도 닦이지도 않는 성질로 보았다. 일반 유화 물감처럼 여러 번 붓질을 더하거나 덧입히는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것이 오히려 동양화 물감처럼 부드럽게 펼쳐지는 자유로운 표현히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나무, 1983 (개인소장)
(귀여운 까치와 강아지)

아이들과 함께 숨바꼭질하는 놀이친구로 그려진 까치는 초등학교 어린시절 부터 노년까지 평생을 함께 한 소재이자 친구, 가족이었다. 이 작품은 상하에 대상을 배치하고 중앙의 여백을 대담하게 활용하며, 한 붓에 그린 듯한 나무를 통해 마치 원숙한 서예가의 필체처럼 강한 힘과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회화적 세련미를 보여주고 있다. 70년대 후반부터 추구하기 시작한 동양화적 기법이 더욱 완숙한 경지로 발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귀여운거 + 귀여운거

 

 

 

 

까치와 마을, 1990

화가의 마지막 유화 작품.

나무를 비롯한 형태의 윤곽이 흐트러져 있고, 유화 물감의 번짐 효과가 화면 전체에 부드럽게 펼쳐져 있다. 특히 색이 칠해지지 않은 여백처럼 표현된 나무는 단단히 문을 닫은 집들과 대비되어 하늘로 부유하는 듯하다. 나무 위에 앉아있는 까치는 땅에 떨어져 있는 해와 달의 모습과 대비되며 하늘로 향하는 화가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해 숙연해진다.

 

 

 

 

나무 위의 아이 / 나무에 올라간 아이*, 1956 (개인소장)

*《제1회 한국미술가협회전랍회》(1956)출품 당시 제목

1956년 9월에 열린 《제1회 한국미술가협회 전람회》에 출품한 작품 2점 중 하나.

기하학적으로 단순하게 표현된 인물, 나무, 집의 형태가 돋보이는데, 이러한 표현은 1956년 경부터 등장해 1960년대 내내 변주되어 1970년대 초까지 이어진다. 특히 선, 원형, 사각형 만으로 그린 인물, 길 끝에 위치한 집, 검게 칠해진 반달, 나뭇가지가 사라지고 줄기와 잎사귀 영역이 하나로 표현되는 나무, 뿌리가 잘린 나무가 화면 끝에 위치한 구성 등 이후 장욱진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들이 종합적으로 처음 그려진 원형 같은 작품이다. 현존하는 작품 중 제목에 '아이 兒'가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예이기도 하다.

 

 

 

 

 

가족, 1955 (국립현대미술관)
가족, 1955 (국립현대미술관)

1964년 반도화랑에서 개최된 장욱진의 첫 개인전에서 일본인 소장가에게 판매된 후 행방이 묘연했던 작품.

평소 머리맡에 두었을 만큼 애착을 가졌던 작품이었고, 생애 처음으로 돈을 받고 팔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시오자와 사다오(1911-2003)에게 판매 후 두고두고 아쉬워하다. 1972년에 <가족도>를 다시 그리기도 했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가족>은 국립현대미술관은 시오자와 사다오의 아들을 통해가 소장가의 아틀리에 벽장에서 작품을 찾게되고, 각고의 노력과 설득으로 작품을 구매, 보존처리과정을 거쳐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작품을 선보이게 되었다. (관련기사 링크)

 

 

 

 

 

가족도, 1972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1964년에 판매된 <가족>을 아쉬워하다 다시 그린 작품

 

 

 

 

 

 

 

 

 

장지문 스타일로 전시가 구성되어있는 4전시실

 

길에서, 1987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230928

 

추석연휴 첫날인 덕수궁 미술관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덕수궁만 북적이는 건가 했는데, 미술관은 두 배로 북적. 계단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 사람들이 몇 명 나와야 몇명을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명절에 서울에서 사람이 빠져나가는건 이제 옛말이 되어버린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람하려는 사람도 많았지만, 작품 수가 워낙에 많아서 모든 것을 집중해서 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270여점이라는 많은 작품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불 수 있게 전시 스토리와 구성을 짠 것 같아 나의 능력치 대비 더 많은 작품을 보긴한 것 같다.  내년 2월까지 이니 기회가 된다면 그 전에 한 번더 가는게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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