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전시) 건축의 소멸 [보안여관]에서 [소록도]를 생각한다 @보안여관

2017. 11. 1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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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리고 있는 「건축의 소멸」전에 다녀왔다.

 

지난 9월에 문화일보 박경일 기자가 쓴 「'욕망'에 스러지는 마을... '사슴섬'이 아프다」라는 기사를 통해 잊고 있던 그 섬이 떠올랐다. 한반도의 땅끝과도 가까운 소록도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섬일 것이다. 소록도는 어쩌면 사람들에게서 점차 소멸되고 있거나, 이미 소멸되어버린 섬일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섬은 소멸되어 가고 있다. 몸도 마음도 아팠던 사람들이 살던 동네는 하나 둘 사람들이 살지 않게 되었고,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은 집도 길도 점차 무너져 가고 있다. 어린시절 성당에서 이 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님에 기사를 봤을 때도, 많이 놓치긴 했지만 소록도의 기사를 봤을 때도 '다음에 봐야지' 하지 않고 바로 클릭을 하고, 꼼꼼히 기사를 읽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

 

 

건축의 소멸 [보안여관]에서 [소록도]를 생각한다

 

5년이라는 꽤 오랜 기간동안 소록도를 드나든 건축가 조병수와 성균관도시설계원, 수류산방의 '소록도'에 대한 기록인 이 전시는 소록도에서 현재 아무도 살지 않는 몇 마을들 중 가장 먼저 사라진 마을 서생리에 대한 기록을 집중적으로 남겼다. 건축잡지를 즐겨 보는 사람들이라면 들어봤을 이름인 김재경, 진효숙, 이지응, 이명섭 사진작가도 기록에 참여했다.

 

전시는 보안여관 1층에서 시작해 2층에서 이어지고, 2층 구름다리를 통해 신건물인 보안1942의 2층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전시관람 과정은 전시내용과도 일맥상통하다. 지난 2016년에 완공된 '소록도 100주년 기념 시설물'과 전시가 열리는 '보안여관'은 오래된 건물에 숨결을 불어넣은 좋은 예로 꼽히는데, 이 작은 두 건물이 의미하는 바와 전시에서 이야기 하는 내용과 닮아 있어 마음에 더 깊이 파고드는게 있었다.

 

소록도

 

소록도라는 섬에 대해 적어보자면, 록은 한자로 사슴을 뜻하는데 주변의 녹동 일대를 '녹두(사슴머리)'라 표기한대서 유래하여 작은 녹도라는 뜻으로 '소록도'가 되었다고 한다.  위치는 목포와 여수 중간쯤으로 고흥군에 소속된 섬이다.

 

사슴섬이라는 동화적인 이름 뒤에는 아픈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일제가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로 이섬에 몰아 넣으면서 이 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명목상 치료가 목적이었지만 '수용'이라고 표현함이 적당했다.  명칭도 '소록도 갱생원'이었으니.. 그들은 철저히 일본인에 의해 고립되었으며, 그 고립은 전쟁이 끝난 후에 다시 우리나라에 의해 지속되었다.

 

소록도는 1916년에 총독부가 지은 자혜의원 주변으로 환우들이 사는 마을 9개가 있다. 그들은 계속 병원에 입원해 있던 것이 아니라 '병사'라고 부르는 각자의 숙소에서 생활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온전치 않은 손과 발로 벽돌을 만들고 간장을 만들기도 하며 생활을 해 나갔다. 1940년 이후로 더이상 발명하지 않는 한센병이지만 이 섬은 지금까지도 고립되어 있다. 전에는 외부인은 허가없이 마음대로 들어갈 수도 없는 곳이었으며 소록도와 거금도를 잇는 다리가 놓아진 지금도 섬의 일부만이 외부인들에게 출입이 허용되는 섬이다.

 

누군가에겐 개발의 대상이며, 누군가에겐 골칫덩이, 누군가에겐 아픈 추억이, 또 누군가에는 때묻지 않은 자연으로 다가오는 이 섬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음세대를 살아갈 사람들에게도 무거운 그리고 잘 해내야만 하는 숙제이다.

 

 

전시도록

전시장에서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무료로 나눠준 도록이 있는데 얇지만 많은 내용이 담겨있었다. 수량이 많이 준비 되지 않았다고 하니 나중에 가는 사람들은 받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전시장에서는 성균관도시설계원에서 직접 그린 손실측도와 함께, 캐드로 작성한 실측도면집이 있는데 너무 상세한 기록에서 엄청난 노력의 흔적이 느껴졌다. 이 노력을 알아줄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그리고 이 노력의 댓가가 밝은 것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것들을 해 왔다는 것이 이 작업이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일제에 의해 그려진 <소록도 갱생원 조감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장이 실려있다. 그들은 뭐이리도 정성스럽게 그려놨을까. 성의없었으면 없는대로 열심히 그렸으면 또 그런대로 기분이 안좋은 자료이다.

 

 

 

 

전시에서 가져온 도록의 뒷 면에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건축의 소멸 [보안여관]에서 [소록도]를 생각한다.

 

 <건축의 소멸, [보안여관]에서 [소록도]를 생각한다>는 지난5년간 건축가 조성룡과 성균건축도시설계원이 소록도에서 한 작업을 널리 알리고 함께 생각하려는 자리입니다. 요즘 소록도에 대해서 다소간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드실 수도 있고, 원로 건축가가 소록도를 작업한다고 하니 합당한 국가적인 프로젝트가 시작된 듯 들리리도 모르겠습니다.

 

모두 오해입니다. 지금도 한 쪽에서는 태연을 가장하고 한 쪽에서는 눈물과 감동을 과장합니다. 우리는 그 은폐된 섬 안의 과거와 현재 가운데 엄선된 극히 일부만을 엿볼 뿐입니다. 조성룡과 성균건축도시설계원의 <서생리 마을작업>은 정부나 공공 기관을 자발적 발의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건축가 조성룡은 소록도에서 무엇을 하려고 했고 무엇을 하지 않으려고 했을까요. 그것은 단지 소록도의 이야기가 아니기도 합니다.

 

저희가 여러분께 거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조성룡과 성균건축도시설계원의 소록도 작업은 정부나 공공 기관의 자발적 발의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건축의 소멸, [보안여관]에서 [소록도]를 생각한다>는 주어진 과제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수행했는지 소개하려는 자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문제를 발견하고 조건을 바꾸는 이야기입니다. 5년 전, 또는 3년 전에도 소록도에서 <100주년 기념 시설(장안리 마을작업)>과 <서생리 마을 작업>을 이렇게 하게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이 일은 한 건축가와 그 주변에 모인 사람들의 처절한 (홍익인간적) 자발과 (민주시민적) 분투로 아주 작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소록도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도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요.

 

저희는 소록도가 진정한 치유와 의미의 공간으로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 작게 시작된 이 일이 방향을 잃지 않고 계속 이어져 나가야 한다고 믿지만, 그것을 보장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저희는 여러분께 도와 달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소록도 마을이 진정한 보존과 상처의 소멸이 이루어지도록 여러 분들께서 이 작업을 기억하고 응원하고 도와 주십시오.

 

 

 

사람들은 불편한 이야기를 잘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불편함을 우리는 최대한 외면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한다. 몇일 전에본 알쓸신잡에서도 유시민 작가가 진도에 다녀와서 한 이야기가 머리속에서 겹쳤다. 우리는 마음이 아파서 외면하거나 피할지라도 그곳에는 사람이 살고, 또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렇게 모두가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머리속에 맴돌았다.

 

나도 도움이 될 만한 일은 하지 못하지만 이렇게 외면하지 않고 관심을 가지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그러다 언젠가 도움이 될 수 있거나 뭔가 할 수 있을만한 때가 왔을때 단단하게 준비가 되어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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